증명할 수 없는 진실을 껴안는 법 – 구의 증명
1. 상실 이후, 고통을 증명하는 방식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은 ‘구’라는 이름의 인물과 그를 바라보는 화자의 여정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이해의 실패마저 감싸안는 연대를 말하는 작품입니다. 소설은 재난 이후 서울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등장하며, 상실과 죄책감, 분노, 소외를 겪는 이들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껴안는 과정을 조용히, 그러나 뼈아프게 그려냅니다. 표면적으로는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지만, 이 소설은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닙니다. 작가는 ‘증명’이라는 단어가 지닌 냉정한 논리 대신, 감정의 결을 따라 독자를 이끈다.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는가? 증명은 가능한가?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구의 증명』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인간..
2025. 6. 2.
흰색의 언어로 써 내려간 상실과 존재의 시
1. 흰색에 스민 기억과 부재의 서사한강의 『흰』은 소설이라기보다 시, 혹은 추도문에 가까운 형식을 지닌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 책은 ‘흰색’이라는 색채를 매개로 하여, 삶과 죽음, 상실과 기억, 존재의 의미를 서정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체로 탐색해 나갑니다. 한강 특유의 조용하고 단단한 문장이 흰색의 사물들 소금, 눈, 이불, 백미, 분유, 상처의 고름 등을 통해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정적 속에서 눈송이가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 듯한, 고요한 감정의 침잠입니다. 한강은 이 책에서 ‘흰색’을 단순한 색의 의미를 넘어선 존재론적 상징으로 삼습니다. 흰색은 삶의 시작과 끝, 혹은 그 중간의 공백을 상징합니다. 태어났다가 이내 죽어간 언니를 향한 추모의 기록이기도 하며, 세상..
2025.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