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의 언어로 써 내려간 상실과 존재의 시
1. 흰색에 스민 기억과 부재의 서사한강의 『흰』은 소설이라기보다 시, 혹은 추도문에 가까운 형식을 지닌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 책은 ‘흰색’이라는 색채를 매개로 하여, 삶과 죽음, 상실과 기억, 존재의 의미를 서정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체로 탐색해 나갑니다. 한강 특유의 조용하고 단단한 문장이 흰색의 사물들 소금, 눈, 이불, 백미, 분유, 상처의 고름 등을 통해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정적 속에서 눈송이가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 듯한, 고요한 감정의 침잠입니다. 한강은 이 책에서 ‘흰색’을 단순한 색의 의미를 넘어선 존재론적 상징으로 삼습니다. 흰색은 삶의 시작과 끝, 혹은 그 중간의 공백을 상징합니다. 태어났다가 이내 죽어간 언니를 향한 추모의 기록이기도 하며, 세상..
2025.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