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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언어로 써 내려간 상실과 존재의 시 1. 흰색에 스민 기억과 부재의 서사한강의 『흰』은 소설이라기보다 시, 혹은 추도문에 가까운 형식을 지닌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 책은 ‘흰색’이라는 색채를 매개로 하여, 삶과 죽음, 상실과 기억, 존재의 의미를 서정적이고도 철학적인 문체로 탐색해 나갑니다. 한강 특유의 조용하고 단단한 문장이 흰색의 사물들 소금, 눈, 이불, 백미, 분유, 상처의 고름 등을 통해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정적 속에서 눈송이가 내려앉는 소리를 듣는 듯한, 고요한 감정의 침잠입니다. 한강은 이 책에서 ‘흰색’을 단순한 색의 의미를 넘어선 존재론적 상징으로 삼습니다. 흰색은 삶의 시작과 끝, 혹은 그 중간의 공백을 상징합니다. 태어났다가 이내 죽어간 언니를 향한 추모의 기록이기도 하며, 세상.. 2025. 5. 31.
고통, 고독, 그리고 자유: 마흔에 만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1.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이다 – 수용의 지혜『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핵심 사상을 중년의 시선으로 새롭게 조명한 책입니다. 중년에 접어들며 많은 사람들은 성공, 성취,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실망을 경험합니다. 청춘의 이상은 퇴색하고, 삶의 현실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시기에 “고통이 삶의 본질이다”라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하지만 이 말은 단지 비관적인 결론이 아닙니다. 그는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지혜가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기대를 줄이고, 욕망을 줄이며, 내면의 평온을 추구하는 삶. 그것이 그가 제안하는 인생 해법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대목은 ‘고독’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통찰입니다. 그는 “고독은 위대한 정신의 .. 2025. 5. 31.
"예술을 지키며, 나를 지킨 시간"-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 예술의 힘과 일상 속 치유《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단순한 직업 에세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상실과 고통을 예술을 통해 어떻게 이겨내고, 그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섬세한 여정입니다. 저자 패트릭 브린리는 형의 죽음이라는 큰 충격을 겪은 후, 치열한 언론계에서 벗어나 고요한 공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지만, 그는 이곳에서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저자가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그는 매일 같은 장소, 같은 작품 앞을 지키지만, 그 시간들이 결코 반복되는 일상으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앞에서는 시간과 인간의 덧없음을 생각하고, 고.. 2025. 5. 30.
현대인의 삶 전반을 조망하는 깊이 있는 소설 – 모순 1. 삶의 이중성과 인간 내면의 모순양귀자의 장편소설 『모순』은 제목 그대로 ‘모순’이라는 인간의 내면과 삶의 양면성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주인공 안진진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며 독자는 인간관계, 가족, 사랑, 가치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성장소설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수많은 감정과 상황의 모순을 사실적이고도 섬세하게 풀어낸 인생 소설입니다. 안진진은 스물넷의 평범한 청년이자,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해 가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소외된 어머니, 도덕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오빠와의 관계 속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갈등은 단순한 가정불화나 개.. 2025. 5. 30.